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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로안 일기

2021. 12. 24 금요일 (맑음)

2022.01.02 10:56

건우지기 조회 수:145

태풍이 휩쓸고 지난 자리는 처참한 전쟁터와도 같다.
상상 이상으로 모든 것이 파괴되었고 고립되었다.
살아 있어도 살아 있는 것 같지 않은 마음이다.
그저 살기 위해 밥을 꾸역꾸역 먹는다.
웃음 뒤엔 슬픔이 있다.
차마 울 수 없기에 웃는 것이고 말은 하지만 힘이 없다.
힘을 내려 하지만 그냥 발버둥이다.
무엇부터 해야 할 지...
아니 무엇부터 해야 할 지 알고는 있으나 여력이 없다.
아직까지 전기가 공급되지 않고 지금도 식수를 구하기 위해 그리고 연료를 구하기 위해 긴 행렬은 끊임이 없다.
그러함에도 크리스마스 연휴를 내년 초까지 지내기 움직이는 차량행렬도 정신이 없을 정도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도 피해복구를 위해 구슬땀을 흘리며 분주히 움직인다.
남자직원들은 배의 잔해를 수거하고 해체하기 위해 여념이 없다.
차라리 물속에 가라앉았으면 해체할 필요도 없이 고기들 집이라도 될 텐데 남의 집앞 해안으로 밀려와 치워주는 작업까지 해야 하기에 이루 말 할 수 없는 힘든 작업을 수행 중이다.
직원들의 눈을 똑바로 볼 수가 없다.
그것은 직원들도 같은 마음인 듯.
서로 미안한 감정이 있는 것 같다.
그래도 이 어려운 시기를 나와 같이 해 주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해야 한다.
많은 분들이 나를 보고 이 정도의 리조트를 가졌으면 성공했다고 말씀하시지만 나의 마음은 절반의 성공이라도 말씀드리곤 했다.
완전한 성공은 없다.
지금 나와 같이 해 주는 직원들이 있기에 그나마 절반의 성공을 이룬 것이다.
본인들이 원한다면 현재 있는 직원들은 내가 죽는 날까지 함께 할 것이고 내가 죽어서도 그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 줄 것이다.
이런 친구들이 있기에 절반의 성공이라고 감히 말 할 수 있다.
나는 평소 필리핀 사람들의 나태함과 진실성 그리고 성실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좋지 않게 이야기를 한다.
아무리 생활이 어렵고 힘들어도 찾아보면 서로 도우며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는 데도 그들은 찾질 않는다.
직원들이 배를 해체하는 작업 중에도 배옆에 와서 쭈그리고 앉아있다.
직원들이 해체하며 재사용이 힘든 나무와 대나무 등을 따로 분리하는 데 그것을 가져가기 위해 옆에서 기다리는 것이다.
본인이 가져 갈 욕심이 있다면 해체작업을 좀 도와주는 것이 마땅한 행동이 아닐까?
힘들게 분리해 놓으면 그 때 가져가고 싶다고 이야기를 한다.
마음같아선 그 자리에서 불을 질러버리고 싶은 심정이나 그것도 좋은 행동이 아니기에 씁씁히 주어버린다.
당연히 일당을 주고 일을 하라면 할 것이고 본인이 해체한 것들도 본인 집으로 가져 갈 것이다.
전혀 도와주지 않는다.
돈을 주지 않으면.
이웃의 진심어린 도움은 기대하지 않는 것이...
우리가 인심을 잃어서가 아니다.
평소 음식부터 여러 가지를 그들에게 주는 데 그때만 탱큐하고 바로 잊어버린다.
이렇게 힘든 시기는 서로 이웃들이 도와주는 힘이 상당히 도움이 되는 데 무척 아쉽다.
지금도 어느 곳에서 위험을 무릎쓰고 복구작업에 매진하고 있는 한인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그리고 반드시 다시 일어서기를 기원한다.
한국에 있는 집사람에게 이런 상황을 전하지 않았는 데 먼저 괜찮냐고 연락이 와서 모든 것을 이야기했더니 이제 그만 한국으로 돌아오라는 이야기만 되풀이 한다.
제주도로 내려가 조그마한 감귤농장이나 하면서 이제는 얼마남지 않은 나의 인생을 살아보라는 것이다.
인생은 다 부질없는 것이라고.
분명 나를 생각해 주는 말인데 나는 그 말을 듣고 눈물이 났다.
아직 포기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간절하다.
몸은 지칠대로 지치고 늙었으나 아직 나의 마음은 열망하고 간절하다.
나는 죽어서도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고 늘 내가 죽으면 우리 직원들 돌봐주고 나의 유골은 릴로안 앞바다에 뿌려달라고 이야기를 했다.
기나긴 세월 24년을 직장생활을 하며 별로 인정도 받지 못하며 퇴직을 했고 필리핀에 와서 그나마 내가 열망하던 일을 할 수 있었고 내가 다시 태어난 곳이라고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살았다.
이런 곳을 과연 내가 버릴 수 있을까?
집사람 생각이 단호하여 괴롭고 아프고 슬프다.
아직은 더 버틸 수 있는 힘을 나를 아는 많은 분들이 주시고 있기 때문이다.
집사람의 걱정을 어떻게 설득을 해야 할 지...
배를 새로 만들어야 하는 데 염치가 없어 조금이라도 도와달라는 말도 꺼내지 못했다.
2년간 수입이 없었으니 그리고 앞으로 얼마나 더 수입이 없을 지 모르니 누구의 도움없이는 당장 배를 건조할 수 없다.
이곳은 다른 곳과 좀 달라 리조트에서 배를 보유하지 않으면 손님들께 제대로 다이빙을 진행해 드리기가 어렵다.
숙달된 보트맨들이 다이버들의 안전에 상당한 기여를 할 수 있는 바다여건이다.
대여하는 배들의 보트맨들에게 이런 기대는 할 수가 없으며 배를 대여하는 비용도 상상 이상이라 그 비용이 손님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되어 부담 이 될 수 있다.
리조트를 운영하면서 배를 보유하고 있지 않은 리조트를 보면 부러운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사실 배는 리조트 입장에서는 가장 소중하면서 애물단지이기도 하다.
바다에 있는 배들로 인하여 무수한 밤을 뜬눈으로 보내기도 하고 늘 걱정하던대로 많은 사건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래도 배는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좋다.
다른 지역처럼 대여비가 저렴하면 나부터 배를 보유하지 않을 수도 있다.
현실은 다시 배를 만드는 것이다.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배를 새로 만드는 날이 새로 시작되는 날이 될 것이다.
그 날이 빨리 와서 힘을 더 낼 수 있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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